NIKE HISTORY2009. 11. 16. 13:11

“몸을 가지고 있으면, 당신은‘선수’다
(If you have a body, you are an athlete.)”

필 나이트 前 회장의 스승이자, 공동 창업자인 빌 바워맨(Bill Bowerman)의 말이다.

그렇다. 진실이다. ‘선수’는 아무나 하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가능성을 몸에 담고 태어났다. 그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을 게을리 하거나, 노력하지 않거나, 아예 포기하기 때문에 ‘선수’가 안 되는 것이지, 못 되는 것이 아니다.

SUB-4가 그렇고, SUB-3주자 되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몸을 가지고 있는 한 이룰 수 있는 목표다. 4시간37분에서 시작하여 SUB-3까지 이루어 본 내 경험상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얘기이다.

빌 바워맨의 이 명언에 기초하여 나이키의 브랜드 사명(mission)이 탄생한다.

‘세상의 모든 ‘선수’에게 영감과 혁신을 불러 일으키는 것’
(To bring inspiration and innovation to every athlete in the world)


이런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11가지의 행동 강령이 있으니, 참으로 좋은 말들이다.

치열한 영업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영업맨들에게, 그리고 결정,결단의 연속에서 살아가는 사업주에게 매우 좋은 지침이 될 만한 말이다.

1.혁신은 우리의 본성이다.(It’s our Nature to Innovate.)
나이키 에어, 나이키 샥스(shox), 와플(waffle), 스위프트, 스피어 등 이름이 어떻든간에 남들이 생각 못했던 것을 생각하고, 남들이 만들지 못했던 것을 만들고, 그리고 기존에 있던 것을 새롭게 개선하는 일, 그리고 가능성을 현실화 하는 일이 우리의 사명이다.

2. 나이키는 회사다.(Nike is a Company.)
성공적인 사업으로 이끌어야 하고, 고객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회사로서의 책임이다.

3. 나이키는 브랜드다.(Nike is a Brand.)
제품으로 승부해야 한다. 그 제품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4. 단순화하라 그리고 나아가라.(Simplify and Go.)

모르면 물어보고, 알면 가르쳐주고, 다른 분야의 전문가를 믿고, 어려우면 협조를 구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으면 성공할 것이고, 실수를 두려워 말고 또한 반복하지 말라.
그리고 꿈을 믿어라.

5. 소비자가 결정한다.(The Consumer Decides.)
고객은 현명하다. 고객을 관성적으로 대하는 날로 그 고객은 우리 곁을 떠난다.

6. 스폰지가 되라.(Be a Sponge.)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고, 마음을 열고 미래를 받아 들여라.

7. 즉시 발전시켜라.(Evolve Immediately.)
항상 변화의 주체가 되라. 혁신에 불을 지펴라. 혁신의 갈망은 우리의 본연의 상태다.

8. 옳은 일을 하라.(Do the Right thing.)
회사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일이 사업과 다른 사람의 삶의 질에 공헌하는 바이다.

9. 기본에 충실하라.(Master the Fundamentals.)
우선 열심히 훈련,일 하는 것 외에 다른 대체 수단은 없다. 끊임없이 훈련하고, 연구하라.
랜스 암스트롱이 고환암을 극복하며 뚜르드 프랑스 6연승을 이루기 위해서 흘린 땀을 생각해보라.

10.우리가 선도한다. 항상. (We are on the Offense. Always.)
우리는 선도자다. 우리가 영향을 받는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선도자가 시장을 지배한다.

11.그 사람(빌 바워맨)을 기억하자.(Remember the Man.)
‘혁신’의 전도사, 동기부여자 ‘빌 바워맨’을 잊지 말자.


마지막 11번 강령은, ‘99년 빌 바워맨의 타계 후 추가 된 강령이라 하니, 나이키에서 빌 바워맨의 위상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빌 바워맨이 이토록 나이키의 ‘정신적 지주’로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끊임없이 ‘혁신’을 꿈꾸어왔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행동하는 환상가’였기 때문이다.

자기가 고안한 ‘와플(waffle)틀’ 러닝화를 직접 선수들에게 신기고, 폐타이어를 녹여 트랙을 조성한다든지, 그리고 ‘조깅’의 효용성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실용서를 집필한다든지, 그는 연구하고 고민하고 실천하는 ‘스승’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말이 나이키 정신의 제1장이 된 것이다. 이번 나이키 러닝 부트캠프에서 가장 화두가 된 것은 단연 ‘혁신(Innovation)’이었다.

‘보호’,‘억제’,’안정’ 등 기존의 러닝화 개념에서 180도 방향을 바꿔 ‘자연’, ‘적응’, ‘강화’라는 생각으로 ‘프리(FREE)’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생태동화적(生態同化的) 자연감응형’ 신소재 ‘SPHERE REACT’ 를 개발한다. 나이키 본사 직원들의 말처럼, ‘혁신은 우리 브랜드의 산소’ 임을 실천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

이번 나이키 러닝 부트캠프는, ‘나’로부터의 혁신, 그리고 나아가 ‘사업’의 혁신, ‘달리기 방법’의 혁신을 생각케 하는 좋은 기회였다. 그들의 행동강령 처럼, “우리가 믿는 바대로 된다

( WE ARE WHAT WE BELIEVE.)”는 명제하에, 나 또한 제2의 바워맨이 못 되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Posted by 주액터스연기학원
NIKE HISTORY2009. 11. 16. 13:07

나이키는 육상을 모태로 태어난 브랜드다. 창업주인 필립 나이트(Phil Knight) 前회장은 오레곤 대학 육상 선수 출신이다. 지금 권좌를 물려받은 빌 페레즈(Bill Perez)회장 또한 마라톤 선수 출신이라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이들의 혈액에 흐르는 육상의 헤모글로빈은 나이키의 공동 창업주인 빌 바워만(Bill Bowerman)으로부터 생성된다. 빌 바워만의 말 한마디가 바로 나이키의 정신이 되고, 바워만의 역사가 곧 나이키의 역사이자 미국 러닝의 역사가 된다. 빌 바워만은 나이키의 정신적 지주이자, 나이키 탄생의 산파였다. 나이키의 일부 러닝화 중- 페가수스, 카타나, 트라이엑스 시리즈 등 빌 바워맨의  실험정신이 깃든 고기능 제품군- 안창(insole)에 ‘중절모를 쓴 중년신사의 얼굴’ 모양의  로고를 보았을 것이다. 바로 그가 ‘빌 바워맨’이다.


빌 바워맨은 오레곤 육상팀을 ‘달리기의 메카’로 만든 전설적인 육상코치로 유명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미국에 ‘조깅’ 바람을 불러 일으킨 인물이라는 점이다. 1962년 오레곤 대학 4마일 릴레이팀이 세계기록을 깨고 얼마 되지 않아, 전 세계기록 보유 팀인 뉴질랜드 팀으로부터 친선경기 초청을 받는다. 그 당시 장거리 육상계의 전설적 코치, 그리고 ‘조깅의 발명가’, ‘조깅 전도사’인 ‘아서 리디아드(Arthur Lydiard)’가 뉴질랜드 팀을 이끌고 있었다.  그때 50세였던 바워맨은 뉴질랜드에서 머물던 6주 동안 아서 리리아드와 매일 조깅을 하게 된다. 몸무게가 5kg쯤 빠졌고, 허리가 10cm가 줄었다고 한다. 뉴질랜드 사람들의 ‘조깅’ 에 감명받은 빌 바워맨은 오레곤으로 돌아 와서는 천천히 편하게 조깅하는 법을 전파하게 된다. 선수가 아닌 일반인에게.. 바워맨은 일요일 아침 달리기의 무대를 만들었고, 조깅  교실 운영과 달리기 상담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가 활동하던 유진(Eugine)시는  ‘조깅의 수도(Jogging Capital)’가 된다. 얼마 후 이 새로운 현상에 대한 정보 요구가  답지하였고, 1966년 그는 심장병 의사 왈도 해리스(Waldo Harris)박사와 함께  ‘조깅(Jogging)’이라는 책을 출간하게 된다. 그 다음해에 증보판을 냈고, 결국 백만 부 이상 이 팔렸다. 이로써 조깅 운동의 씨앗이 미국의 토양에 단단히 심어진 것이다.

 1957년, 창업주 필 나이트(Phil Knight)회장은 오리건 대학에서 회계학과 학생이자, 육상부 선수로 활동하면서 그 육상부의 코치 빌 바워맨을 만나게 된다. 빌 바워맨은  필 나이트에게는 코치이자 스승이자 나중에 사업의 동반자가 된다.

스탠포드 대학 경영대학원을 다니던 필 나이트는, 일본으로부터 러닝화를 수입하여 미국 시장에서 판매하는 것은 좋은 사업이 될 것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쓴다. 그리고는 바로 실행에 옮긴다. 1962년 일본으로 날아간 필 나이트는 ‘블루 리본 스포츠’라는 회사명으로 ‘타이거(Tiger)社- 아식스의 전신- 와 거래를 튼다. 그 후 필 나이트와 빌 바워맨은 각자 500불씩 투자하여 본격적인 러닝화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필 나이트가 재정,회계 일을 맡고, 빌바워맨이 신발을 기획하고, 제프 존슨이 판매 현장을 총괄하는 3각 편대가 가동되니, 이것이 나이키의 시작이었다.

나이키 미디어 캠프에 참가한 우리 일행들은 22만평의 나이키 캠퍼스의 주요 시설과 장소를 둘러 본다. 캠퍼스 내에 있는 커다란 인공호수에서는 거위가 한가로이 물놀이를 하고 있고, 그 옆 잔디 구장에서는 쟁반 던지기 놀이를 하는 직원, 조깅을 즐기는 직원, 축구를 하는 직원들이 보인다. 그리고 나즈막한 건물들에는 나이키가 후원했던, 그리고 나이키를 빛낸 유명 스포츠 스타의 이름이 걸려 있다. 스티브 프리폰테인, 존 멕켄로, 마이클 조던, 미아 햄, 타이거 우즈 등이 건물명으로 각인 되어있다. 그리고 건물 외벽에는 나이키 ‘스우쉬’ 로고와 나이키의 선수들의 사진이 바람에 나부낀다. 끊임없이 자긍심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도구다. ‘저 유명한 선수들을 우리가 키웠다’는…


‘나이키 러닝 부트캠프(bootcamp)’답게 각국의 참가자들은 ‘러닝’을 통해서 더욱 친숙한 의사소통의 기회를 갖게 됐다. 각 팀별로 나누어 팀 대항 릴레이 시합을 하면서 진한 스킨쉽의 기회도 갖게 되었다. 숲이 우거진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니 빨간 우레탄이 깔려 있는 ‘마이클 존슨’ 트랙이 나왔다. 캠퍼스내의 건물들이 유명 스포츠 스타의 이름으로 명명되어진 반면, 울창한 숲 속에 자리잡은, 5레인의 고즈넉한 우레탄 트랙에는 90년대의 단거리 스타 ‘마이클 존슨’의 이름이 붙여졌다. 우리는 어릴 적 운동회처럼 신나게 달렸다.  1번 주자로 달렸던 내가 제일 먼저 들어오니, 다들 난리다. 왜 그렇게 잘 뛰냐고. “한국 남자들은 보통 이 정도는 뛴다…” 라고 하니, 다들 자빠진다.

트랙에서의 단거리를 마친 후, 우리 일행은 나이키 월드 캠퍼스 외곽으로 향한다. 22만평 대지의 외곽으로 약 4Km 정도의 흙길이 나있다. 그 흙길 위에는 자잘한 나무 조각(우드칩:woodchip)이 깔려 있다. 이를 ‘우드칩 트레일’이라 부른다. 폭신폭신한 느낌이 정말 환상적이다. 자연과 내 몸이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느낌이었다. 부러웠다.  적어도 우리 ‘남산’은 흙길이 되어야 한다고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든다.

Posted by 주액터스연기학원
NIKE HISTORY2009. 11. 16. 12:48

오리건의 뽀송뽀송한 햇살을 받으며 버스를 내린 곳은 포틀랜드 시내에서 30여분 떨어진 비버톤(Beaverton)이라는 동네의 ‘나이키 월드 캠퍼스(Nike World Campus)’. 나이키의 본사를 부르는 말이다.

주변의 숲과 나즈막한 현대적인 건물들이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을 주는 가운데, 정문 옆의 ‘스우시(swoosh)’- 나이키 로고-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1971년, 회사 로고가 필요했던 필립 나이트 회장은 알고 지내던 미대생 ‘캐롤린 데이비슨’에게 로고를 의뢰한다. 35불을 주고 얻은 그 로고를 두고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을 한다. 팔콘,벵갈,디멘젼6 등등..그러다 제프 존슨-나이키 최초의 정식 직원. 그의 공헌도와 최초라는 역사성 때문에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 ‘나이키’로 칭하자 제안한다.

꿈에서 그리스 신화의 승리의 여신의 날개를 보았다나.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리하여 ‘나이키’가 탄생한다.

참고로 제프 존슨(Jeff Johnson)은 필 나이트회장과 달리기 경합을 벌였던, 인류학 전공의중장거리 선수 출신의 나이키 최초의 정식 직원 이었다. 그는 단지 판매원이 되기를 싫어했다. 코치와 선수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이 필요한 것, 그들의 요구사항을 경청했고,이를 제품에 반영되도록 아이디어를 제공한 달리기 소매업의 컨설턴트 역할을 했다.1966년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 ‘블루리본 스포츠(나이키사의 전신)’매장을 열어, 이 매장을 ‘러너의 메카’로 만든다.

검정 대리석 위로 조용히 흐르는 조경 수로를 따라, 정면에 보이는 현관이 ‘프리폰테인 홀’이다. 스티브 프리폰테인(Steve Prefontaine). 그는 70년대 전설적인 중장거리 스타였다. 그 당시 그는 7개의 미국 중장거리 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나이키가 공식 후원하는 제1호 선수였다. 그의 중장거리에서의 ‘천재성’과 나이키 역사의 제1막을 여는 선수로서의‘역사성’,그리고 70년대 ‘달리기 붐’의 도화선에 불을 댕긴 인물로서, 그리고 제임스 딘을 연상케 하는 24세의 ‘짧은 생애’ –똑같이 교통사고로- 이 모든 것이 드라마틱이다. 그가 나이키 본사의 문 맨 앞에 위치하는 이유다.  


스티브 프리폰테인은 70년대를 풍미했던 선수로서, 1마일에서 10K까지 중장거리 경기에서14번의 미국 기록을 갖고 있었고, 1마일(1.6K)을 4분 이내로 8번 달렸고, 5,000M를13분30초 미만으로 9번 달린 최고 기량의 선수였다. 빌 바워맨의 추천서를 받아 오리건대학에 입학한 유명 선수중 한 사람이다. 그리고 빌 바워맨은 그를 위해 직접 스파이크를 만들어준다.


1972년 올림픽 출전 평가전 5000M에서 1위를 하지만, 뮌헨 올림픽에서 4위로 떨어지고만다. 그 이후 그는 더욱 성숙해지고, 진지해진다. 20만불의 프로 전향 제의도 물리치고아마츄어로 남아, 다가올 몬트리올 올림픽에서의 금메달을 목표로 한다. 그리고 나이키의 첫 공식 선수가 된다. 홍보이사의 공식 직함을 갖고.하지만 천재는 神이 시기하였던지, 24세의 젊은 나이에 자동차 전복 사고로 요절하고 만다.





프리폰테인 홀 안으로 향하는 유리 현관문을 열자,
5개의 동그란 원판이 놓여 있다. 그것을밟고 튀어 올라 오란다. 알고 보니 작은 트렘폴린이었다. 쿠션의 기능을 몸으로 느끼게 하기 위한 도구였다. 폴짝폴짝 뛰어 올라 홀 안으로 들어가니, 엄숙하리만큼 조용했던 분위기는 단박에 어린 아이들 처럼 화기애애해졌다.


무엇을 설명,설득하는 데 동원되는 이들의 사고의 자유로움, 그리고 그 기법의 기발함을 이 작은 트렘폴린을 보고 느끼게 한다. 다음날 맨발 훈련의 효과를 느끼게 하기 위해 그 자리에 모래와 자갈을 깔아 놓고 그것을 밟고 지나가라고 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람의 몸으로 체감케 하는 이 작은 기술이야 말로 ‘날것의 싱싱한’ 프리젠테이션 기법이자, 마케팅 ‘4P’에서의 확실한 ‘프로모션(promotion)’-촉진-기법임을 느끼게 한다.


스타일에 빠져버린 사람들 http://www.stylepit.co.kr


출처 - 生生한 달리기 & 마라톤 커뮤니티, ⓒRunDiary(rundiary.co.kr) 제공

Posted by 주액터스연기학원